+ 리뷰를 작성함에 있어 2년여 만에 티스토리에 글을 쓰게 된 경위를 짧게나마 밝힌다. 첫 번째로는 요즘 주로 이용하는 SNS인 트위터는 의견의 고찰과 보관에 있어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는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인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나온 비망록이라는 개념이 추후 여러 방면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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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PARASITE , 2019
기생충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지하철 9호선의 스크린에 띄워진 인디언 분장을 한 채 정면으로 클로즈업된 송강호 배우의 모습이었다. 기생충이라는 제목과 인디언 분장은 도무지 그 연관성과 접점을 유추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영화가 개봉했고, 나는 사비를 들여 온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결과적으로 깔끔하게 평하자면 취향에 맞아 재밌게 본 영화였다. 만약 내가 기택의 가족, 혹은 박사장의 가족에 이입해서 감상했다면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등장인물들에 이입하기보단 개미 키우기 세트 속 개미 집단을 관찰하는 기분으로 봤기 때문에 그런 후유증은 일지 않았다.
여담으로 대학에서 교양수업으로 영화의 연출적 기법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이를 적용하면서 영화를 보려면 최소 두번은 봐야 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한번 더 보았다. (아직 이런 시선 처리가 익숙지 않기 때문에 첫 관람 때는 플롯 위주로 보게 되며, 그 덕에 두 번째 관람에선 전체적인 시나리오를 파악한 상태에서 그걸 뒷받침하고 극대화하는 연출을 파악하며 볼 수 있게 된다)
기생충의 화면적인 연출은 상당히 단순명료한 편이다. 박사장 집 이곳저곳에 은밀히 산재해있는 숨고 엿듣는 공간, 그리고 위와 아래의 극명한 대조와 은유적 표현. 그 덕인지 개인적으로는 화면 연출보다는 음악의 쓰임 쪽에 있어 보다 흥미가 가고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전반적으로 오케스트라풍의 노래가 자주 흘러나오는데 처음엔 기존의 클래식 음악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에 찾아보니 대부분의 노래는 정재일이라는 분께서 작곡하신 것 같았다. (그 덕에 '짜파구리'라는 이름의 곡이 있을 정도) 그리고 영화 내에선 작은 볼륨으로 삽입돼있어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일요일 아침'이라는 곡은 밝고 명쾌한 듯하면서도 마치 여자의 신음이 섞인듯한 비명 같은 현악기의 울음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어가 있는데 그걸 듣곤 노래 자체가 영화를 잘 표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내용 자체에 대해선 아직 잘 모르겠다. 마치 폭우로 물난리가 난 기택네 집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혹은 작품에 담긴 사상 같은 것이 그저 흐리멍덩하고 하릴없이 손가락 사이로 축축하게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가난이라는 중심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가난이라는 것 자체를 옹호하거나 비판하거나 동정하지 않는다. 그저 평소처럼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빠질 수 있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라는 식으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단적으로 그걸 보여주는 예는 단연 '대만 카스텔라'라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순간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또 사라져 버린 대만 카스텔라는 대한민국의 여러 가장들이 사회적 기반의 발판으로써 만들어 딛고자 한, 막연한 희망과 절박함이라는 잔디에 가려진 자못 든든해 보이지만 한없이 연약한 진흙탕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걸 택했던 기택은 아둔하거나 한심한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 운없이 가난이라는 구멍에 빠져버린 소시민 중 하나이며, 영화 내에서도 박사장 가족에 '기생'하면서라도 생을 이어가고자 하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 그려질 뿐이다.
이 영화를 본 후,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 해당 영화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짤막한 리뷰에 대해 찾아본적이 있었다. 거기엔 나한테선 나올 수 없었던 몇 가지 신선한 의견들이 있었다. 그중 유독 흥미로웠던 것들을 요약하자면, '가난한 가족들이 저렇게 사이가 좋다니 말이 안 된다', '반지하에서 살았던 사람으로서 공격적이고 잔인한 영화였다', '가난해본 적 없는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건 불합리하다' 정도. 전자의 두 의견은 기택네와 비슷한 처지에 있어본 사람들의 의견인지라 마음이 아팠고, 마지막 의견은 걸고넘어질 가치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것이라 한심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가장 아련했던 대사를 적으며 감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보다 더 밑'에 있는 어떤 등장인물의 대사다.
'난 그냥 여기가 편해, 그냥…. 아예 여기서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결혼식도 여기서 한 것 같고… 국민연금이야 뭐 나는 해당 없고… 노후는 정으로 다 사는거지. 그래서 말인데, 나 여기 계속 좀 살게 해 주쇼.'
이들에게 있어 가난은 더 이상 극복해야 할 것, 계획적으로 벗어나야 할 것이 아니다. 극 중 내용으로 유추해 봤을 때 처음부터 그들이 그곳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무얼 해봐도 달라지지 않는, 발버둥 쳐봤자 오히려 더욱 밑으로 가라앉는 상황 때문에 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체취와도 같은 것이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설령 그들이 그걸 인식한다 해도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구멍 위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다리 혹은 밧줄을 따사로운 햇볕을 받는 땅 위의 사람들은 던져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땅 위의 사람들은 그 밑의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아마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가냘픈 소리가 들려와 무심코 고개를 돌려 구덩이를 내려다보면 여태껏 맡아본 적 없는 역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알아서 좋을 것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재밌게 봤지만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제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 상을 무려 네 개나 받았는데, 다른 것 보다도 약자(기택 가족이 대표하는 소시민)를 착취하고 저 아래로 내몬 강자(박사장 가족이 대표하는 소시민)가 '아마존에서 직구로 구매한' 인디언 소품을 가지고 노는 내용이 희화적으로 나오는 영화가 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저 상을 수상을 했다는 것이 자못 놀라운 부분이다. 특히나 그전에 sns에서 한 백인 미국인이 어떤 축제에서 인디언 분장을 한 사진을 보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국가 간 정치적 마찰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 영화한테 상을 주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트럼프의 발언 역시 영화와는 관계 없이 여러 가지로 재밌는 면이 있다.
+ 개인적으로 영화 속 상징에 대한 추측글로서 재밌게 읽었던 글을 첨부하고자 한다. 글쓴이의 모든 의견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혀 가늠이 안 잡히던 '수석'에 대한 신선한 시선을 제시한 글이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https://www.dmitory.com/index.php?mid=garden&page=561&document_srl=79019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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