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흥미로운 사건에 대해 다루길래 오랜만에 일부러 찾아서 보고있었다. 근데 거의 다 끝날 무렵 갑자기 속보가 떴다. 이태원에서 압사사고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때가 한 12시 쯤 됐을 때였는데 관련해서 뉴스가 딱히 보이지 않아서 트위터에 검색해보니 난리가 나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길바닥에 수십명이 누워있고 그 위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쿵짝이는 클럽노래에 묻힌 채 CPR을 하고있는 영상이었다.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큰 일이 일어난건 알았지만 크게 체감은 못했고 또 전 날 새벽 4시에 잠들었던지라 많이 피곤했기에 1시 쯤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한 8시 쯤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눈 뜨자마자 어제 뉴스가 생각났고 잘 수습됐는지, 피해 규모는 어느정도인지 궁금해서 검색해보았고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사망자가 150명 가량이나 나온 것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했다. 이후 찾아본 영상과 사진들, 그리고 TV에서 흘러나오는 관련 뉴스들은 무척 참혹했다. 수백수천명의 사람한테 깔려 두 손이 잡히고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혼절한 사람, 내장파열로 인한 것인지 배가 부풀어있는 사람, 서울 한복판 길거리에 모포로 몸과 얼굴이 가려진 채 누워있는 수십개의 시체. 전쟁영화에서나 본 듯 한 참상들이었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믿기질 않는다.

 내가 살면서 겪은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 아픈 참사는 단연 세월호다. 전원 생존이라는 오보를 듣고 침몰해가는 배의 사진이 첨부된 기사에 '타이타닉같다'고 썼던 그 사실이 가슴에 사무쳐 몇 년 뒤 어떻게든 찾아내서 지웠던 기억이 남는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자리에서 TV 한 귀퉁이에 뜬 사망, 실종이라는 단어 옆에 표시되는 숫자들을 보던 나날과 실내 체육관에 모여서 오매불망 소식만을 기다리는 유가족들의 모습. 다람쥐 택시 뉴스를 전달하며 눈물짓던 아나운서. 무력함과 허망함을 느꼈던 참사.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고 그 날이 매 해 한번씩 찾아오면 루리웹의 하루카씨 글에 조문객으로 들르게 된다.

 근데 이 참사는 성격이 약간 달랐다. 세월호는 가라앉은 배와 유가족을 주로 봤다면 이 참사는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 인지라 수많은 피해자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고 그것은 여과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느끼는 기분이 사뭇 다르다.

 그리고 근 일주일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책임을 묻는 뉴스, SNS에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사람들, 그 곳에 간 피해자들을 조롱하거나 위로금에 대해 세금 운운하며 헐뜯는 사람들. '경찰 배치를 했어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는 행정안정부장관이나 '핼로윈을 하나의 현상이다(고로 공공기관이 따로 나설 필요가 없었다)'라 하는 용산구청장. 마지막으로 비참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다가 마지못해 '사과한다'고 말하는 윤석열까지. 

 그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건 '그 곳에 간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일반 시민들의 글 이었다. 그러면 홍대에 놀러갔다 참사가 발생하면 홍대에 놀러간 사람이 잘못한 것이고,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봉화 매몰 사고 같은 경우는 그런 위험한 곳으로 일을 하러간 사람이 잘못한 것이고, 만약 급행 9호선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런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람의 잘못인건가? 왜 같은 처지의 같은 입장인 피해자와 생존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일상의 즐거움을 찾아 떠났다가 무통제한 상황에 휩쓸려 명을 달리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수의 화살을 날리면 좋은 것일까? 그럼으로써 '자신은 상황판단을 잘 해서 참사를 당하지 않은 현명한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만약 그런 사람이 나중에 다른 사고를 당한다면 그때는 '내가 어리석어 선택을 잘못 내린 탓'이라고 말할 것인가?

 나는 다행히 이번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진 않았지만 그 '압사'라는 것과 비슷한 경험은 자주 했다. 그 곳은 출퇴근 시간대의 급행 9호선 열차 안. 전 회사를 다닐땐 매일같이 이용한 대중교통이다.

 출근길은 일부러 그 인파를 피해기 위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일반을 이용했다. 그러나 퇴근길은 피할 수 없었는데 사람이 밀려나도록 우겨넣어지는 차량에 탑승하면 그 때부턴 유체이탈의 시간이었다.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한 그 곳에서, 두 손으로 핸드폰을 할 수도 없는 그 곳에서 나는 살기 위해 눈을 감고 최대한 주위의 것을 무(無)의 상태로 만들었다. 차량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출렁이는 인파의 움직임 속에서 지치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 대학생 시절 한 동기는 만원 지하철을 타면 공황상태가 일어나서 출석시간에 대해 교수님의 양해를 받아 다소 어긋난 시간에 오곤 했는데 그 것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이제는 지하철을 한 달에 한 두번 탈까 말까 하는데 가끔씩 타러 가면 여전한 사람의 숫자에 기함이 터져나온다. 어떻게 이러고 매일을 살았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위의 사진은 올해 여의도 세계 불꽃축제를 가려 신논현역을 들렀을때의 사진이다. 저건 인파의 무리를 보고도 '9호선 고속터미널 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 정도인 것이다.

 불꽃축제는 '기관이 개최한 행사'라서 그런지 경찰이나 경비가 많았고 덕분에 통행에 아주 큰 무리는 없었다. 야외에다 통제를 해도 저 정도인데 그 좁은 이태원 골목에서 사람이 그렇게 모였을걸 생각하면 참사가 안난 것이 이상할 정도다. 친구들이랑 놀러다녔던 이태원의 골목은 좁고 후미지고 여기저기 경사가 많았으니까. 

 이번 참사가 일어난 곳을 검색해보니 1번 출구 거의 바로 앞에 있는 좁은 길이었다. 그런 곳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죽었다. 자식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지금도 누구의 책임이니 하면서 멱살을 잡고 싸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아프다. 사람대 사람으로서 명복을 빌고 슬퍼하기도 아까운 시간에 정작 책임 질 사람들은 헛소리나 늘어놔서 빈축을 사고있고, 몸과 마음이 다친 사람들은 같은 시민들로부터 다시 한번 상처가 헤집어지고 있으며 TV를 보는 사람들은 몇 년 전의 허탈함을 다시금 느낀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탄핵 얘기가 나올 법 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언론 통제를 잘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민들을 잘 조종하는 것인지 조용한게 이상할 정도다. 

 어쩌다 이런 나라가 된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 참사의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고 싶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그 곳에선 아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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