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안에서 발견한 신기한 꽃
셋째 날 말룸파티를 향해 가다 발견한 크리스탈 코브.

 셋째 날은 말룸파티라고 어떤 계곡으로 향했다. 전 날 호핑투어때는 우리가족 포함 총 15명 가량의 인원이 움직였는데 이 날은 커플 하나만 같이 다녀서 총 6명 밖에 안됐다. 도착하고 잠깐 물놀이를 한 후 가이드분들께서 준비해주신 음식을 먹었다.

 여기선 자유시간을 갖기 전에 튜브를 타고 상류지역까지 거슬러 올라간 다음 뒤에 튜브 가이드 한명이 붙어서 노를 저어주며 강을 따라 흘러가는 체험을 즐겼는데, 아무래도 계곡이다보니 물살이 빠르고 낙차가 약하게나마 있는 곳이 있어서 보다 스릴넘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의 액션이 밋밋해서 그런지 가이드분이 가끔 뒤로 돌아 거꾸로 물결을 타기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 곳은 놀기 바빠서 사진을 뒤늦게 찍었던 기억이 난다.
다이빙대가 있었는데 어른 아이 현지인 여행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포즈로 뛰어들었다.
계곡 양옆으로 작은 정자가 여럿 놓여있고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고 물놀이를 즐겼다.
엄마가 고기를 몇 점 던져주니 근처를 계속 어슬렁 거리던 길냥이

 이 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하나 있다. 현지인 꼬마였는데 사진에선 벗었지만 처음 봤을땐 'KOREA ARMY'라고 쓰인 검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꼭 한국인에게만 어그로를 끌어대곤 했다.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곤 손으로 물총을 쏘다가 상대가 반응하면 팔로 물보라를 일으키는 식이었고 물총쏘는 법을 친절히 알려주기도 했다. 왜 현지인한테는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 문구가 괜히 쓰인 문구가 아니구나 싶었다.

 이후 다른 한국인 여성 두명이 튜브를 잡고있을때 그걸 끌고 뭍으로 와주기도 하고, 내가 다이빙을 해서 물속에서 허우적댈때 '누나 누나'거리며 튜브를 던져서 잡게 한 다음 데리고 나오기도 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헤어질때 100페소를 팁으로 주었는데 되게 좋아해서 기뻤던 기억이 난다. 팁 문화가 없는 곳이면 감히 그러지 않았겠지만 필리핀이라 그럴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해변으로 나가 석양을 구경하고자 하였는데 수평선에 구름이 짙게 깔려있어서 아쉽게도 전날처럼 제대로 보진 못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우기에 석양을 본다는건 다소 힘든일인 듯 하다.

근처 한국인이 운영하는 스파에 가서 하체 마사지를 받았다.

 얼굴은 나름 선크림을 열심히 발랐지만 다리는 포기한지 오래였기에 상당히 많이 탔다. 3~4일 간은 계속 쓰라리고 가려울 정도였다. 

 마사지를 할 때는 향기나는 에센스를 발라주었는데 미끌거리는 감촉이 기분 좋았다.

 이 날 저녁은 Sensi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는데 여러모로 별로였다. 일단 라이브 가수들이 노래는 뒷전이고 떠들기 바빠서 시끄러웠고, 식사도 되게 늦게 나왔다. 심지어 맥주는 식사가 나올때도 안나와서 몇번 더 요청했는데 그래도 늦게 나왔다. 동생이랑 엄마는 그래도 음식은 맛있었다는데 내가 먹은 생선 감자요리는 안타깝게도 맛 역시 별로였다. 식사를 대충 해치우고 해변으로 나와 산책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심즈에서나 보던 클럽과 물담배를 여기서 본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스콜이 쏟아졌다. 이 날은 좀 오래 왔는데 1시간 반 정도 온 듯 하다. 8시 정도에 눈을 떴는데 비가 쏟아지길래 곧 그치겠거니 했는데 그럴 기미가 안보여 그냥 나와서 리조트 내를 걸어다녔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개구름이 떴는데 한국의 폭우같은 비가 쏟아지다니 요상한 기분이었다.

잠깐 데리고 놀았던 달팽이 친구

 이 날은 마사지 빼곤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해변가의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사먹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저건 필리핀 식 요리라는데 특별한 건 없고 다소 짭짜름한 고기구이와 밥, 계란후라이다.

구름이 많았지만 날씨는 좋았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건데 해변의 재질과 색이 바다의 풍경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칼리보 공항에서 본 바다는 한국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여긴 에메랄드 빛인걸 보면 그렇다. 아무래도 하얗고 고운 모래사장이 에메랄드 빛의 주 재료겠지?

이 날도 할로망고를 사먹었다

 이후 벤을 타고 골프장을 끼고있는 한 커다란 숙소에 갔는데 거기서 전신 스파를 받았다. 그 전에 해변의 신기하게 생긴 굴과 해변을 구경했는데 이 곳 모래사장엔 산호가 가득했다.

 크리스탈 코브에서도 그랬는데 모래사장에 산호가 널려있는건 무척 진귀한 풍경이었다. 화이트 비치에도 산호가 종종 보이긴 하지만 인파가 많아서 그런지 흐트러져서 일부러 찾지 않는 한 잘 보이지 않는데 저 두 곳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물결을 따라 긴 곡선 형태로 잔해가 늘어져있었다. 크리스탈 코브에서 머문 시간이 길지 않아 맘에 드는 조각을 못 가져온게 아쉬웠는데 여기서 예쁜 한 조각을 가져올 수 있었다.

스파 장소로 향하는 길

 이 곳 스파는 전 일정에서 받은 스파보다 훨씬 비싼 곳이었다. 8만원 정도로 기억한다. 들어가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온탕에 몸을 푼 다음 벨을 누르면 마사지사가 와서 전신 마사지를 해준다. 몸 발은 물론 얼굴과 정수리까지 해주는데 그 덕에 목욕 후 두르고 있던 얇은 천 역시 벗은 상태로 있어야 했기에 약간 민망했다. 그래도 당장 마사지를 안하는 부분은 천으로 가려두기도 하고, 눈 위에 종이?를 올려둬서 눈을 뜰 수 없게 만들기에 수치심은 금방 잊고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었다. 이때 받은 부위 중 엄지와 검지 사이의 살, 그리고 발바닥 안쪽 부위가 엄청 아팠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날의 마지막 저녁은 해변가에서 가족들과 물장구를 치며 보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지만 열대기후의 나라인지라 물은 전혀 차갑지 않았다.(가장 차가웠던 물은 말룸파티 계곡의 물이었다. 여기도 막상 들어가면 잊게 되지만)

 크고 격하게 수영을 하기보단 부모님의 배영 연습을 도와드리고 바닷물과 모래사장의 감촉을 물씬 즐겼는데 평화롭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과 가방을 가지고 와서 해변에 맘껏 들어가기 힘들었던지라 모래 조형물을 만들기도 했는데 밀물에 서서히 잠겼던 모습이 생각난다. 뒤로 하고 돌아서서 가는데 지나가던 여행객이 플래시를 터트려가며 찍는걸 볼 수 있었다. 저의 작품이 당신의 추억 한 조각이 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야경이 아름다운 리조트였다.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아 아쉽다

 마지막 날 저녁은 첫 날 저녁에 들렸던 바에 갔다. 그때는 망고주스와 모히또 같은 음료만 마셨는데 이 날은 제대로 식사를 즐겼다. 음식이 뛰어나게 맛있진 않았지만 맛은 괜찮았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좋았다. 무엇보다 분위기와 라이브 가수의 노래는 다른 어느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이 날은 엄마가 가수한테 리퀘스트도 부탁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 스팅의 'English man in New Yorks'이었다. (저녁 먹으러 나서는 길에 리조트 내 뷔페에서 들리던 노래였다)  필리핀에서 뉴욕 노래라니 좀 이상하지만 분위기는 좋았고 역시 잘 부르셨다. 동영상 촬영은 물론 박수갈채와 팁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신기한게 이 날 자리잡고 음식을 시킨 후 노래가 끝났을때 박수를 열심히 쳤는데 우리를 기억하는건지 'Nice to see you again'이러는 것이 아닌가. 우리 가족이 매번 노래가 끝날때마다 박수를 치기도 했고 무엇보다 엄마의 격한 리액션이 기억에 남으셨던 것 같다. 이 곳은 노래에 집중하기 보단 대화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다수인지 박수 소리랄게 없었는데 그래도 우리가 열심히 치다보니 이어 따라 하시는 분이 몇 생기셔서 기분이 좋았다. 가수 분에게도 이 마음이 전해졌기를.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아빠가 갑자기 철판 아이스크림을 찾으셨다. 이 근방을 여러번 돌아다녔지만 한번도 보지 못했던지라 계속 헤맸는데 동생이 검색으로 찾았는지 도착할 수 있어서 각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주문했다. 가보니 한국인 맛집인지 한국어로 적혀있는 메뉴판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쿠키 앤 크림을 주문할까 했는데 이런 곳에서 먹기엔 다소 심심한 듯 하여 코코넛을 주문했다. 맛이 고소하고 깔끔해서 가볍게 먹기 좋았다.

먹지 못해 아쉬운 할로망고 빙수
BTS는 보라카이에도 있다
마지막 날 찍어본 숙소
'다가보라'에서 챙겨준 망고가 4개 남아있었는데 혼자 열심히 해치워버렸다.

 다음 날 배와 벤을 타고 다시 칼리보 공항으로 이동했다. 도착 후 한 사무실 안에 앉아 시간을 기다렸는데 비가 한창 쏟아졌었는지 바닥에 물이 가득했고 하늘은 맑았다.

출국 날에 찍은 입국 날 바라보았던 풍경

 12시 정도에 비행기를 타고 이륙을 했다. 출국 날과 비슷하게 날씨가 좋아서 맑은 하늘과 구름을 볼 수 있었다. 

 여행 내내 보라카이의 분위기에 한껏 취해있던지라 다시금 현실 로그인을 할 생각에 다소 우울했는데 짐을 싸고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벤에 싣고 이동하는 일련의 피곤한 일을 겪어서 그런지 급작스럽지 않게 천천히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먼 미래에 순간이동이 가능해져서 1초만에 한국과 타지를 이동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런 마음의 준비같은게 힘들어지지 않을까? 물론 거리낌 없이 기술의 이익을 누리겠지만 말이다. <하와이하다>에서 읽은 문구인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은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지만 그로 인해 시간이 10배는 더 빨리 흐르게 되었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 문구는 한국과 필리핀을 두고 적용할 수 도 있겠다 싶다.

 그러고보면 필리핀은 인구는 많지만 경제력은 다소 부족한 나라라던데, 몇 년 뒤엔 그 인구를 바탕으로 한국을 넘보는 강대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어떠려나?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이 나라가 앞으로 보다 세계의 파도를 잘 해쳐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느껴지는 현실
집에 갈땐 시외버스를 탔다. 정말 오랜만에 본 김포공항 실내
나는 못먹었지만 동료분들께 돌린 기념품인 망고젤리와 바나나칩. 기념으로 사진을 남겨둔다

 이제와서 쓰는거지만 사실 이번 여행에 대해선 큰 기대가 없었다. 첫번째 이유는 필리핀은 이미 한번 와 본 나라였고(그때는 세부였지만) 두번째 이유는 처음 본 바다의 풍경이 동해와 비슷해보였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시간동안 정말 알차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 생애 이렇게 매일매일 물놀이를 해본 적이 있던가 싶었다. 특히 이번엔 수영을 못하시는 부모님 마저 구명조끼와 튜브, 그리고 자식들의 힘을 빌려 즐겁게 즐기시고 마지막엔 혼자서 헤엄치기도 하셔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가이드를 비롯해 만난 여러 현지인들은 정말 친절한 사람이었고 덕에 밝은 기운을 나눠받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노래와 순수한 장난과 타인을 생각해주는 따스한 마음들은 아직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억들이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다시 한번 더 들리고 싶은 곳이다. 그 때까지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또 다시 즐겁게 바다를 즐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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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 3년 동안 코로나19사태로 해외여행을 한번도 가질 못했다. 특히나 19년도에 친구들과 영국여행을 계획하며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구글지도에 마크로 표시를 해두고 여행책을 사서 보고 했던 것들이 그 덕에 물거품이 된 기억이 뚜렷해서 상당히 한으로 맺혀있는 부분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종식된건 아니지만 백신이 나오기도 했고 확진자수도 감소하는 추세라 그 전처럼 삭막한 분위기는 아닌듯 하다. 실제로 여행객도 늘어나고 있고. 그런 분위기와 더불어 부모님의 결혼 30주년을 기념하여 필리핀 보라카이로 4박 5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들른 인천국제공항. 몇 년 전 서유럽 여행을 갈때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일본도 다녀오긴 했는데 이쪽은 해외여행이라기보단 특색 강한 지방여행 느낌이 강해서 그런지 공항에서 기다린 기억이 안난다. 분명 재밌긴 했는데.

공항에서 검색원으로 일하는 친구 덕에 잘 알고있던 부분이다. 혹시 몰라 가기 전에도 몇번 더 체크했지만

 이번 여행은 자유여행이었다. 처음엔 패키지를 생각했으나 패키지를 극혐하는 내 성향을 존중해주신 아빠가 하나부터 열까지 찾아서 계획하셨다. 그땐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일정을 소화해보니 이렇게 짜는것도 무척 힘들일이겠구나 싶었다. 나 하나만 다니면 모를까 취향이 가지각색인 성인들을 끌고다니는건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짜증내거나 불평하지 않도록, 주도자의 의지에 수긍하며 따라다니는 식으로 노력하였다.

 아침의 이른 시간에 타는 비행기라 새벽 4시쯤에 일어났다. 그 덕에 일년에 한번도 보지 못하는 일이 많은 일출도 보았다. 생각보다 해는 금방 뜨고 세상도 눈 깜짝할 새 밝아졌다. 세상은 이렇게 빠르게 돌아간다.

 탑승구까지 오는 길에 매장은 여럿 있었지만 일단 면세점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술&담배, 화장품 가게를 빼면 다 닫혀있었고, 음식을 파는 가게들은 폐점한 곳이 많았다. 코로나 전의 여행객 수를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다는걸 체감한 부분이었다.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와 그 안에서 보는 하늘이었다. 하늘은 맑고 깨끗했는데 입국할때는 한국에 미세먼지가 있는지 탁한 느낌이 있었다. 

 칼리보 공항에서 내렸는데 보라카이로 들어가기 위해 가야하는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국제공항인데도 무척 작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심사대도 두개가 전부였고 기계로 돌아가는 절차가 거의 없이 사람의 오프라인 작업으로 대부분의 것들이 이뤄졌다. 심지어 출국시 비행기 표를 보여주고 체크하는 것도 인쇄해서 뽑은 목록에 사람이 일일이 하나하나 체크하는 모습을 보고 생소함을 느꼈다.

 공항에서 내린 후 미니밴을 타고 1시간 가량을 이동했는데 내 기억 속의 필리핀과 다름이 없었다. 크고 울창한 식물들과 늘어져있는 커다란 개들과 작고 조잡한 집과 가게들. 특히나 인상깊은건 역시 개들인데 수컷은 중성화가 안돼있었고 암컷들은 젖이 다 불어있었다. 그러면서도 느긋하게 차도 바로 옆에 누워있는데 날이 더우니 다들 축 늘어지는구나 싶었다. 이런 나라에 살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지치긴 할 것이다.

 이후엔 선착장에서 내려 10분 정도 배를 타고 보라카이로 이동하는데 아쉽게도 이쪽 사진은 찍지 않았다. 내린 후에는 한국의 택시 역할을 하는 툭툭이를 타고 20분가량 이동하여 숙소에 도착하였다.

 첫 날 들른곳은 시장 구석에 자리잡은 한국인 상대의 음식점이었다. 숙소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는데다 많이 피곤했고, 후줄근한 장소에 문 밖엔 비린내가 풍기는 수조가 가득한 생선가게였기에 심기가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요리도 좀 오래 기다렸는데 다행히 나온 음식이 맛있고 푸짐했다. 이 날 평소 선망하던 랍스타 한마리를 혼자 해치우고 무척 기분이 좋았다. 오징어는 안먹은 대신 밥을 많이 먹었는데 밥은 뭘 넣고 볶은건지 은은하게 이색적인 맛이 났다.

 이 음식 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들도 그런데 필리핀은 베트남처럼 이목구비를 자극하는 향신료는 잘 쓰지 않는것 같았다. 덕에 먹는것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뭐든 잘 먹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해가 저물면 해변은 빛 하나 없이 깜깜한지라 모래사장도 바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멀찍이서 바라보면 형형색색 가득한 거리를 볼 수 있다

 이후 들른 곳은 해변가에 늘어선 곳 중 한 바 겸 식당이었다. 이 라인의 가게들은 라이브 가수를 고용한 곳이 많았는데 여기의 여가수분이 잘부르시기도 하고 분위기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마치 심즈4의 아일랜드 라이프 DLC 분위기랄까? 따로 뭘 깔지 않아 모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닥과 짚으로 엮은 움집과 찬란한 조명등은 사람의 마음을 일렁이는데 충분하였다. 심지어 여기는 여행객이 직접 노래를 부를수도 있었는데 뉴질랜드에서 오신 한 관광객분이 열창을 하시곤 라이브 가수분과 수다를 떠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묵은 곳은 헤난가든 리조트라는 곳이었다. 헤난 시리즈가 여러개인지 길거리를 지나면 다양한 헤난 숙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중국의 4대 항공사 중 하나인 하이난의 소유인 듯 한데 시설이 매우 훌륭했다. 아쉽게도 우리는 패밀리 룸을 써서 창문이 수영장쪽으로 나있지 않았지만 덕에 방에선 외부와 차단된 채 시간날씨 구애받지 않고 아늑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독특한 방 구조. 덕분에 편해서 좋았다.

 낮에나 밤에나 수영장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사용 가능했던걸로 기억한다. 근데 9시라고 딱 차단하진 않고 느긋하게 풀어주는지 9시 반까지도 헤엄을 치는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수중 의자를 가진 바는 꼭 한번 이용해보고 싶었는데 하루 일정을 알차게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면 자기 바빴던지라 가보질 못해서 좀 아쉬운 부분이다.

리조트를 돌아다니다보면 지나가는 고양이를 한번씩 볼 수 있었다.

 이 곳은 디몰이라는 곳이다. 여러 상점들이 모여있고 다양한 것을 살 수 있었다. 모자, 슬리퍼, 음식, 간식, 기념품 등 다양한걸 샀고 하루에 한두번은 꼭 방문했었다. 특별히 살게 없어도 돌아다니며 사람도 보고 물건도 보고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만 신기했던건 생각보다 물가가 낮지는 않았는데 한국인도 이렇게 느껴진다면 현지인한텐 도대체 어떻게 다가올까 싶었다. 한국인이 제주도 가는 것 보다 더 큰 마음을 먹고 와야하는 곳이 아닐까?

 우리가 갔던 때의 날씨는 감사하게도 매일이 화창했다. 물론 우기였기에 스콜이 한번씩 쏟아지긴 했지만 짧으면 5분, 길어도 한 시간 만 왔고 강풍이 분다거나 하루종일 비가 쏟아지거나 하진 않았다. 이번주는 태풍이 오고있어서 해양스포츠 금지령이 내려지고 그렇다는데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고 하늘이 도왔나 싶다.

샤워하는 곳에 나있는 작은 새싹. 생명력이 강하다.
아침의 수영장 풍경

둘째날은 호핑투어가 메인이었기에 래쉬가드를 입고 길을 나섰다. 래쉬가드는 처음 입어봤는데 큰 불편함 없이 편했다.

김병만이 정글의 법칙에서 먹었다는 무슨 게와, 구운 바나나, 구운 새우, 구운 돼지, 구운 필리핀 소세지. 소세지는 다소 달았다.

 둘째날과 셋째날의 호핑투어와 말룸파티는 '다가보라'라는 보라카이 여행가이드를 통해 진행하였다. 픽업과 안내를 도와주고 밥도 챙겨주고 여러 꿀팁도 알려주는 도우미 느낌이었는데 덕에 무척 편했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고 말을 걸지도 않았지만 같은 나라의 다른 사람들과 행동하다보니 그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흥분하기도 하고 따라하기도 하며 일행같은 일행아닌 시간을 보냈다.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즐거운 분위기를 공유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탄 배의 이름은 '맘마미아'였는데 그 덕인지 출발할때 맘마미아가 우렁찬 소리로 바다에 울려퍼졌고 이어서 다양한 K-팝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실 K-팝 노래는 이 배 뿐만이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많이 들었는데 한국인이 많이 오는 휴양지란 이런건가 싶었다. 근데 말은 이렇게 적어도 사람은 한국인이 많지 않았다. 80퍼가 현지인, 10~15퍼가 한국인, 나머지는 백인 이었고 신기하게도 일본인이나 중국인은 보지 못했다. 그 덕인지 길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니 하오'나 '곤니찌와'보다는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거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곳은 첫번째 호핑투어 다음으로 들린 두번째 목적지 크리스탈 코브라는 작은 섬이다. 날씨에 따라서 다른 곳을 가기도 하던데 이 날은 우기란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날씨라 무탈히 향할 수 있었다.

 개인 사유지라는데 정자를 여기저기에 배치해서 돌아다니거나 쉬기에 좋았다. 아쉽게도 머무는 시간이 길진 않아서 전체적으로 한번 돌며 사진을 찍고 수영 좀 하다 돌아온게 전부인데 완전히 개인 일정이었다면 여기서 보다 오래 머무르며 날씨를 즐겼을 것 같다.

현지 가이드분께서 주워주신 이름모를 붉은 꽃을 꽂고 찰칵. 히비스커스인가?

이건 현지 가이드분이 주워주신 소라와 조개와 꽃, 그리고 내가 잠수해서 주워온 산호 조각이다. 사실 잠수는 처음에 엄두가 안 나서 시도를 못했다. 애초에 장비 1도 없이 바다를 간 거면 물 속에서 숨 쉴 생각을 아예 안했을텐데, 스노클링을 계속 쓰다보니 물 속에서도 숨 쉬는게 익숙해지기도 했고 수압이 생각보다 강해서 조금만 들어가도 귀가 금새 아파왔기 때문이다. 근데 이 곳에서 들른 바다는 이 날 돌아다닌 세 곳 중 가장 얕은 곳이라 용기가 솟구쳐서 시도해보았다. 물론 깊이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산호도 줍고 뿌듯했다.

 그리고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물 속에서 나풀거리던 해초가 신기해서 손을 뻗었더니 닿자마자 피부가 쓰라리고 저린게 아닌가. 아예 손으로 꽉 잡은것도 아니고 스친 수준인데 마치 해파리에 쏘인 것 같았다. 이 통증이 더 심해져서 손가락이 썩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니 별 탈 없이 통증이 멎었는데 아찔한 경험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수영하느라, 그리고 물 속이라 사진은 없지만 세번째 스팟이 가장 깊었는데 어느정도였냐면 물에 떠서 내려다보는 심해는 바이오쇼크의 랩쳐가 연상될 정도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블러드본의 어촌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청록색의 공간은 아득히 멀어보였는데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지상같기도 했다. 물 속이라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홀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이 세계는 얼마나 크고 나는 또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심해공포증은 없지만 이해는 되는 순간이었달까. 사람의 마음을 삼키는 힘을 가진 무한한 공간이다.

두 분은 가져오신 선글라스를 아주 잘 쓰셨다.
현지 가이드분이 주워다주신 불가사리

 우리 엄마는 맥주병인데다 물을 무서워하셔서 이번에도 예전 세부 여행때처럼 소리지르면서 아무것도 못하실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경험이라도 있어서 그런지 이번엔 보다 수월히 돌아다니셔서 무척 신기했다. 아무래도 보라카이에 놀러온 것이다보니 매일매일이 물놀이의 연속이었는데 해변, 계곡, 수영장 그 모든 곳에서 상당히 재밌어하셨다. 수영장에서 허리를 받치고 배영을 도와드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예전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인데 역시 사람은 변하나보다.

 이 날은 정말 운이 좋아서 우기임에도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난 석양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서 그러려니 했는데 이후 일정때 바다에 나가봐도 석양을 보는건 구름 덕에 힘든 일이어서 되게 운이 좋았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중년 분들은 자신의 인생시계와 닮아있어서 그런가 석양을 많이들 좋아하시는데 부모님도 멋진 컷을 많이 남길 수 있어서 행복하셨을거라 생각한다.

 이 날 저녁은 마찬가지로 해변가의 식당 하나를 골라잡고 들어가 세트메뉴 B 를 주문했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는데 다들 열심히 놀다 와서 그런지 바닥을 보이며 알차게 긁어먹었다. 현지음식(?)이 여럿 있었고 맛도 있어서 잘 주문했다고 생각한다.

해당 식당 뒷편에 있던 수영장과 숙소

 보라카이 해변에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이렇게 심어져있는 작은 야자수 였다. 휴양지라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닐테니 어쩌다 싹이 난건 아니고 일부러 심은 듯 한데 이미 나무가 많아서 정말 제대로 키울 생각인건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걸 보니 두바이에서 본 바둑판 형태로 끝없이 펼쳐진 나무가 생각났다. 나라마다 나무심는 방식도 다양한가보다.

 유명 체인점인지 무려 두 곳이나 보이던 할로망고. 맛도 좋았지만 왠일인지 아빠가 할로망고 할로망고 타령을 하셔서 두번이나 사먹었다. 아쉽게도 매번 실내가 사람으로 가득하여 망고빙수를 사먹진 못했지만.

여기서 보니 더 반가운 모구모구

 이 날의 마지막 코스는 스파벅스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이었다. 가격이 싸기도 하고 아빠가 마사지를 워낙 좋아하셔서 여행 첫 날을 제외하곤 매일 마사지를 받았다. 이 날은 몸 전체적으로 받았는데 크게 아프지 않고 부드러웠다. 더 세게 받을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마음이 느긋해지고 편해서 좋았던지라 '세게'를 따로 외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 생긴건지 모르겠는데 손에 상처도 났다. 지금도 약지는 딱지가 크게 앉아있다. 다행히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하나도 안아팠다. 안타깝게도 발의 상처는 이후에도 계속 아파서 고생 좀 했지만 이 정도의 상처가 생길 정도로 재밌게 놀았다는 것이니 영광의 상처라 할 수 있다. 평소 사무실에서 일만 하는데 언제 이런 상처가 또 생기겠는가. 요즘 읽는 책 <하와이하다>를 보면 글쓴이와 그 남편이 보디보드에 푹 빠졌을때 온 몸이 상처투성었다 했는데 마땅히 그럴만 하다 싶었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달팽이. 예전에 태국 여행 갔을때 비가 그친 잔디밭에서 저런 모양의 달팽이를 여럿 보고 식겁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것 그보다 크기가 훨씬 컸다. 길이만 해도 2배였다. 얘를 근처 잔디밭에 놓아주다 얘보다 약간 작은 달팽이들이 교미하고 있는 것도 발견하였다. 날이 습하고 더운 곳이라 그런가 동물이나 식물이나 크기가 장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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