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필리핀 - 보라카이 221020~221024 (1/2)

Mono_0313 2022. 10. 29. 20:34

 근 3년 동안 코로나19사태로 해외여행을 한번도 가질 못했다. 특히나 19년도에 친구들과 영국여행을 계획하며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구글지도에 마크로 표시를 해두고 여행책을 사서 보고 했던 것들이 그 덕에 물거품이 된 기억이 뚜렷해서 상당히 한으로 맺혀있는 부분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종식된건 아니지만 백신이 나오기도 했고 확진자수도 감소하는 추세라 그 전처럼 삭막한 분위기는 아닌듯 하다. 실제로 여행객도 늘어나고 있고. 그런 분위기와 더불어 부모님의 결혼 30주년을 기념하여 필리핀 보라카이로 4박 5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들른 인천국제공항. 몇 년 전 서유럽 여행을 갈때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일본도 다녀오긴 했는데 이쪽은 해외여행이라기보단 특색 강한 지방여행 느낌이 강해서 그런지 공항에서 기다린 기억이 안난다. 분명 재밌긴 했는데.

공항에서 검색원으로 일하는 친구 덕에 잘 알고있던 부분이다. 혹시 몰라 가기 전에도 몇번 더 체크했지만

 이번 여행은 자유여행이었다. 처음엔 패키지를 생각했으나 패키지를 극혐하는 내 성향을 존중해주신 아빠가 하나부터 열까지 찾아서 계획하셨다. 그땐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일정을 소화해보니 이렇게 짜는것도 무척 힘들일이겠구나 싶었다. 나 하나만 다니면 모를까 취향이 가지각색인 성인들을 끌고다니는건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짜증내거나 불평하지 않도록, 주도자의 의지에 수긍하며 따라다니는 식으로 노력하였다.

 아침의 이른 시간에 타는 비행기라 새벽 4시쯤에 일어났다. 그 덕에 일년에 한번도 보지 못하는 일이 많은 일출도 보았다. 생각보다 해는 금방 뜨고 세상도 눈 깜짝할 새 밝아졌다. 세상은 이렇게 빠르게 돌아간다.

 탑승구까지 오는 길에 매장은 여럿 있었지만 일단 면세점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술&담배, 화장품 가게를 빼면 다 닫혀있었고, 음식을 파는 가게들은 폐점한 곳이 많았다. 코로나 전의 여행객 수를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다는걸 체감한 부분이었다.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와 그 안에서 보는 하늘이었다. 하늘은 맑고 깨끗했는데 입국할때는 한국에 미세먼지가 있는지 탁한 느낌이 있었다. 

 칼리보 공항에서 내렸는데 보라카이로 들어가기 위해 가야하는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국제공항인데도 무척 작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심사대도 두개가 전부였고 기계로 돌아가는 절차가 거의 없이 사람의 오프라인 작업으로 대부분의 것들이 이뤄졌다. 심지어 출국시 비행기 표를 보여주고 체크하는 것도 인쇄해서 뽑은 목록에 사람이 일일이 하나하나 체크하는 모습을 보고 생소함을 느꼈다.

 공항에서 내린 후 미니밴을 타고 1시간 가량을 이동했는데 내 기억 속의 필리핀과 다름이 없었다. 크고 울창한 식물들과 늘어져있는 커다란 개들과 작고 조잡한 집과 가게들. 특히나 인상깊은건 역시 개들인데 수컷은 중성화가 안돼있었고 암컷들은 젖이 다 불어있었다. 그러면서도 느긋하게 차도 바로 옆에 누워있는데 날이 더우니 다들 축 늘어지는구나 싶었다. 이런 나라에 살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지치긴 할 것이다.

 이후엔 선착장에서 내려 10분 정도 배를 타고 보라카이로 이동하는데 아쉽게도 이쪽 사진은 찍지 않았다. 내린 후에는 한국의 택시 역할을 하는 툭툭이를 타고 20분가량 이동하여 숙소에 도착하였다.

 첫 날 들른곳은 시장 구석에 자리잡은 한국인 상대의 음식점이었다. 숙소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는데다 많이 피곤했고, 후줄근한 장소에 문 밖엔 비린내가 풍기는 수조가 가득한 생선가게였기에 심기가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요리도 좀 오래 기다렸는데 다행히 나온 음식이 맛있고 푸짐했다. 이 날 평소 선망하던 랍스타 한마리를 혼자 해치우고 무척 기분이 좋았다. 오징어는 안먹은 대신 밥을 많이 먹었는데 밥은 뭘 넣고 볶은건지 은은하게 이색적인 맛이 났다.

 이 음식 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들도 그런데 필리핀은 베트남처럼 이목구비를 자극하는 향신료는 잘 쓰지 않는것 같았다. 덕에 먹는것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뭐든 잘 먹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해가 저물면 해변은 빛 하나 없이 깜깜한지라 모래사장도 바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멀찍이서 바라보면 형형색색 가득한 거리를 볼 수 있다

 이후 들른 곳은 해변가에 늘어선 곳 중 한 바 겸 식당이었다. 이 라인의 가게들은 라이브 가수를 고용한 곳이 많았는데 여기의 여가수분이 잘부르시기도 하고 분위기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마치 심즈4의 아일랜드 라이프 DLC 분위기랄까? 따로 뭘 깔지 않아 모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닥과 짚으로 엮은 움집과 찬란한 조명등은 사람의 마음을 일렁이는데 충분하였다. 심지어 여기는 여행객이 직접 노래를 부를수도 있었는데 뉴질랜드에서 오신 한 관광객분이 열창을 하시곤 라이브 가수분과 수다를 떠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묵은 곳은 헤난가든 리조트라는 곳이었다. 헤난 시리즈가 여러개인지 길거리를 지나면 다양한 헤난 숙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중국의 4대 항공사 중 하나인 하이난의 소유인 듯 한데 시설이 매우 훌륭했다. 아쉽게도 우리는 패밀리 룸을 써서 창문이 수영장쪽으로 나있지 않았지만 덕에 방에선 외부와 차단된 채 시간날씨 구애받지 않고 아늑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독특한 방 구조. 덕분에 편해서 좋았다.

 낮에나 밤에나 수영장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사용 가능했던걸로 기억한다. 근데 9시라고 딱 차단하진 않고 느긋하게 풀어주는지 9시 반까지도 헤엄을 치는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수중 의자를 가진 바는 꼭 한번 이용해보고 싶었는데 하루 일정을 알차게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면 자기 바빴던지라 가보질 못해서 좀 아쉬운 부분이다.

리조트를 돌아다니다보면 지나가는 고양이를 한번씩 볼 수 있었다.

 이 곳은 디몰이라는 곳이다. 여러 상점들이 모여있고 다양한 것을 살 수 있었다. 모자, 슬리퍼, 음식, 간식, 기념품 등 다양한걸 샀고 하루에 한두번은 꼭 방문했었다. 특별히 살게 없어도 돌아다니며 사람도 보고 물건도 보고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만 신기했던건 생각보다 물가가 낮지는 않았는데 한국인도 이렇게 느껴진다면 현지인한텐 도대체 어떻게 다가올까 싶었다. 한국인이 제주도 가는 것 보다 더 큰 마음을 먹고 와야하는 곳이 아닐까?

 우리가 갔던 때의 날씨는 감사하게도 매일이 화창했다. 물론 우기였기에 스콜이 한번씩 쏟아지긴 했지만 짧으면 5분, 길어도 한 시간 만 왔고 강풍이 분다거나 하루종일 비가 쏟아지거나 하진 않았다. 이번주는 태풍이 오고있어서 해양스포츠 금지령이 내려지고 그렇다는데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고 하늘이 도왔나 싶다.

샤워하는 곳에 나있는 작은 새싹. 생명력이 강하다.
아침의 수영장 풍경

둘째날은 호핑투어가 메인이었기에 래쉬가드를 입고 길을 나섰다. 래쉬가드는 처음 입어봤는데 큰 불편함 없이 편했다.

김병만이 정글의 법칙에서 먹었다는 무슨 게와, 구운 바나나, 구운 새우, 구운 돼지, 구운 필리핀 소세지. 소세지는 다소 달았다.

 둘째날과 셋째날의 호핑투어와 말룸파티는 '다가보라'라는 보라카이 여행가이드를 통해 진행하였다. 픽업과 안내를 도와주고 밥도 챙겨주고 여러 꿀팁도 알려주는 도우미 느낌이었는데 덕에 무척 편했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고 말을 걸지도 않았지만 같은 나라의 다른 사람들과 행동하다보니 그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흥분하기도 하고 따라하기도 하며 일행같은 일행아닌 시간을 보냈다.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즐거운 분위기를 공유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탄 배의 이름은 '맘마미아'였는데 그 덕인지 출발할때 맘마미아가 우렁찬 소리로 바다에 울려퍼졌고 이어서 다양한 K-팝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실 K-팝 노래는 이 배 뿐만이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많이 들었는데 한국인이 많이 오는 휴양지란 이런건가 싶었다. 근데 말은 이렇게 적어도 사람은 한국인이 많지 않았다. 80퍼가 현지인, 10~15퍼가 한국인, 나머지는 백인 이었고 신기하게도 일본인이나 중국인은 보지 못했다. 그 덕인지 길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니 하오'나 '곤니찌와'보다는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거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곳은 첫번째 호핑투어 다음으로 들린 두번째 목적지 크리스탈 코브라는 작은 섬이다. 날씨에 따라서 다른 곳을 가기도 하던데 이 날은 우기란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날씨라 무탈히 향할 수 있었다.

 개인 사유지라는데 정자를 여기저기에 배치해서 돌아다니거나 쉬기에 좋았다. 아쉽게도 머무는 시간이 길진 않아서 전체적으로 한번 돌며 사진을 찍고 수영 좀 하다 돌아온게 전부인데 완전히 개인 일정이었다면 여기서 보다 오래 머무르며 날씨를 즐겼을 것 같다.

현지 가이드분께서 주워주신 이름모를 붉은 꽃을 꽂고 찰칵. 히비스커스인가?

이건 현지 가이드분이 주워주신 소라와 조개와 꽃, 그리고 내가 잠수해서 주워온 산호 조각이다. 사실 잠수는 처음에 엄두가 안 나서 시도를 못했다. 애초에 장비 1도 없이 바다를 간 거면 물 속에서 숨 쉴 생각을 아예 안했을텐데, 스노클링을 계속 쓰다보니 물 속에서도 숨 쉬는게 익숙해지기도 했고 수압이 생각보다 강해서 조금만 들어가도 귀가 금새 아파왔기 때문이다. 근데 이 곳에서 들른 바다는 이 날 돌아다닌 세 곳 중 가장 얕은 곳이라 용기가 솟구쳐서 시도해보았다. 물론 깊이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산호도 줍고 뿌듯했다.

 그리고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물 속에서 나풀거리던 해초가 신기해서 손을 뻗었더니 닿자마자 피부가 쓰라리고 저린게 아닌가. 아예 손으로 꽉 잡은것도 아니고 스친 수준인데 마치 해파리에 쏘인 것 같았다. 이 통증이 더 심해져서 손가락이 썩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니 별 탈 없이 통증이 멎었는데 아찔한 경험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수영하느라, 그리고 물 속이라 사진은 없지만 세번째 스팟이 가장 깊었는데 어느정도였냐면 물에 떠서 내려다보는 심해는 바이오쇼크의 랩쳐가 연상될 정도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블러드본의 어촌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청록색의 공간은 아득히 멀어보였는데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지상같기도 했다. 물 속이라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홀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이 세계는 얼마나 크고 나는 또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심해공포증은 없지만 이해는 되는 순간이었달까. 사람의 마음을 삼키는 힘을 가진 무한한 공간이다.

두 분은 가져오신 선글라스를 아주 잘 쓰셨다.
현지 가이드분이 주워다주신 불가사리

 우리 엄마는 맥주병인데다 물을 무서워하셔서 이번에도 예전 세부 여행때처럼 소리지르면서 아무것도 못하실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경험이라도 있어서 그런지 이번엔 보다 수월히 돌아다니셔서 무척 신기했다. 아무래도 보라카이에 놀러온 것이다보니 매일매일이 물놀이의 연속이었는데 해변, 계곡, 수영장 그 모든 곳에서 상당히 재밌어하셨다. 수영장에서 허리를 받치고 배영을 도와드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예전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인데 역시 사람은 변하나보다.

 이 날은 정말 운이 좋아서 우기임에도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난 석양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서 그러려니 했는데 이후 일정때 바다에 나가봐도 석양을 보는건 구름 덕에 힘든 일이어서 되게 운이 좋았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중년 분들은 자신의 인생시계와 닮아있어서 그런가 석양을 많이들 좋아하시는데 부모님도 멋진 컷을 많이 남길 수 있어서 행복하셨을거라 생각한다.

 이 날 저녁은 마찬가지로 해변가의 식당 하나를 골라잡고 들어가 세트메뉴 B 를 주문했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는데 다들 열심히 놀다 와서 그런지 바닥을 보이며 알차게 긁어먹었다. 현지음식(?)이 여럿 있었고 맛도 있어서 잘 주문했다고 생각한다.

해당 식당 뒷편에 있던 수영장과 숙소

 보라카이 해변에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이렇게 심어져있는 작은 야자수 였다. 휴양지라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닐테니 어쩌다 싹이 난건 아니고 일부러 심은 듯 한데 이미 나무가 많아서 정말 제대로 키울 생각인건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걸 보니 두바이에서 본 바둑판 형태로 끝없이 펼쳐진 나무가 생각났다. 나라마다 나무심는 방식도 다양한가보다.

 유명 체인점인지 무려 두 곳이나 보이던 할로망고. 맛도 좋았지만 왠일인지 아빠가 할로망고 할로망고 타령을 하셔서 두번이나 사먹었다. 아쉽게도 매번 실내가 사람으로 가득하여 망고빙수를 사먹진 못했지만.

여기서 보니 더 반가운 모구모구

 이 날의 마지막 코스는 스파벅스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이었다. 가격이 싸기도 하고 아빠가 마사지를 워낙 좋아하셔서 여행 첫 날을 제외하곤 매일 마사지를 받았다. 이 날은 몸 전체적으로 받았는데 크게 아프지 않고 부드러웠다. 더 세게 받을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마음이 느긋해지고 편해서 좋았던지라 '세게'를 따로 외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 생긴건지 모르겠는데 손에 상처도 났다. 지금도 약지는 딱지가 크게 앉아있다. 다행히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하나도 안아팠다. 안타깝게도 발의 상처는 이후에도 계속 아파서 고생 좀 했지만 이 정도의 상처가 생길 정도로 재밌게 놀았다는 것이니 영광의 상처라 할 수 있다. 평소 사무실에서 일만 하는데 언제 이런 상처가 또 생기겠는가. 요즘 읽는 책 <하와이하다>를 보면 글쓴이와 그 남편이 보디보드에 푹 빠졌을때 온 몸이 상처투성었다 했는데 마땅히 그럴만 하다 싶었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달팽이. 예전에 태국 여행 갔을때 비가 그친 잔디밭에서 저런 모양의 달팽이를 여럿 보고 식겁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것 그보다 크기가 훨씬 컸다. 길이만 해도 2배였다. 얘를 근처 잔디밭에 놓아주다 얘보다 약간 작은 달팽이들이 교미하고 있는 것도 발견하였다. 날이 습하고 더운 곳이라 그런가 동물이나 식물이나 크기가 장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