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dow of the Colossus / 완다와 거상
최근에 했던 게임 중 가장 재밌었던 작품.
이 게임은 PS4때 무료 배포하는 걸 받아만 두고 잊어버렸는데 플레이그 테일을 마친 후 라이브러리를 뒤적이다 발견하여 플레이하게 되었다. 이 게임도 전 게임과 마찬가지로 사전 정보 하나 없이 시작했는데 그 덕인지 정말 예상치 못한 감정을 많이 느꼈다.
게임은 불친절하다. 스토리에 대한 설명은 없는 수준이고 플레이도 검을 들어 빛을 따라가서 거상을 물리쳐라 하는것이 전부다. 그리고 거상을 찾아가도 이렇다 할 설명이 없다. 그래서 처음엔 대체 무슨 게임인지 감이 안 잡혀서 공략을 찾아보았다. 그 이후에도 플레이를 쭉 하면서 느낀 건데 생긴 건 액션이지만 막상 해보면 퍼즐에 가까운 게임인 것 같다.
이 게임도 전투중이 아니면 HUD가 아예 보이지 않는지라 사진 찍기가 편했다. 심지어 보통 플레이어 캐릭터를 화면 정중앙에 두는 여타 3인칭 게임과는 다르게 좌우로 배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덕에 게임 내에 존재하는 포토 모드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도 꽤 그럴싸한 스샷을 많이 건졌다. 이건 후술 할 단점에 속하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장점도 있었다.
거상은 저마다 다른 지역에서 차별화된 몸체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를 활용하여 문양에 칼을 박아넣어 쓰러트리면 된다. 일단 맵이 평범하지 않다 싶으면 필히 그걸 활용하라는 제작진의 의도로 보면 된다. 난 그 점을 파악까지는 했는데 파훼법을 일일이 찾기가 힘들어서 어느 정도 시도하다가 금세 공략을 검색하곤 했다. 거상이 총 16개일 텐데 이 중에서 오로지 나만의 힘으로 잡은 개체는 6개도 안될 거 같다. 그 점은 좀 아쉽지만 게임하면서 스트레스받다가 던지는 것보단 손쉽게 클리어하며 즐겜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후회하진 않는다.
사냥은 재밌었지만 스토리쪽은 왠지 마음을 비워야 할 것 같아서 일찌감치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별게 없었다. 스케일이 작다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전작과 스토리가 어느 정도 이어지는 거 같던데 전작은 당연히 안 해봤고, 후에 찾아보니 설령 했어도 이해엔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 내용이 전부였다. 이런 특성과 더불어 모든 미션을 마치고 기괴해진 주인공의 모습은 내게 상당한 충격을 줬던 게임인 <인사이드>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도 얘는 소녀의 부활이라는 목적을 이룬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아무튼 이 게임 정말 재밌었다. 하지만 사실 처음엔 접을 생각을 했었다. 구린 조작과 카메라 시점 때문이었는데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1. 황량한 배경을 보다 잘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인지 주인공이 화면의 중앙이 아닌 좌우로 상황에 따라 번갈아가며 배치됨. 심지어 카메라가 주인공 머리 위가 아닌 거의 바닥에 위치함.
2. 1번의 이유로 플레이어 입장에선 시선의 위치가 상당히 낮아짐. 거기다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 것 처럼 화면이 덜덜 거리며 흔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환상의 시너지로 3인칭 게임에선 경험하기 힘든 멀미가 유발됨.
3. 이 상황에서 길 찾겠다고 칼을 뽑아들면 카메라가 위로 쳐들려서 하늘이 보이기도 함. 내리면 또 홱가닥 돌아간다.
4. (패드기준) 키 배치가 이상한지라 최고속력으로 달리면서 칼을 들려면 손가락이 꼬임.
5. 사람은 그나마 나은편인데 말은 방향 전환이 바로바로 안됨. 상당히 큰 궤적을 돌아야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그 거리를 계산하여 일찌감치 조절을 해놔야 한다.
이런 이유때문이었다. 거기다 맨 처음엔 검의 빛 방향도 헷갈려서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도 했고.
그래서 시작한지 한 20분 만에 때려치울 생각을 했는데 메타크리틱 점수가 무려 블러드본과 비슷한 90점 초반이라 결국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다시 패드를 잡았다. 구린 조작감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과 포기를 해서인지 다행히 두 번째 시도는 큰 무리 없이 성공하였다. 거상이 주는 압도적인 스케일과 일렁임이 마음에 꽂히기도 했고.
가장 좋았던 점은 일반적인 지상전 뿐만 아니라 수중전, 허공전 등의 다채로운 전투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몬헌 월드를 할 때 수중전이 없는 게 이상하게도 아쉬웠는데 이걸 완다에서 해소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상으로 첨부한 허공전은 그야말로 말할 것도 없고. 플레이하는 내내 '몬헌이나 소울본 게임이 이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확인을 해본 적은 없지만 확실할 것이다.
또 한가지 놀라운 점은 난 이 게임이 원작이 PS3 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PS2 이었다. 신기해서 영상을 찾아봤는데 물론 그래픽에선 큰 차이가 나지만 그 장엄한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충격을 받았다. 이 게임을 PS2에서 접한 사람은 신세계를 맛본 느낌이 아니었을까?
난 이 게임을 25인치 모니터 한대로 했는데 만약 70인치의 큰 TV에서 했다면 그 느낌이 어땠을지 상상이 안된다. 나중에 보다 큰 데로 이사가서 TV를 사게 된다면 다시 한번 꼭 해보고 싶은 게임이다. 물론 1회 차 때만큼의 충격은 받을 수 없겠지만 그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생각지도 못하게 큰 즐거움을 준 게임! 후에 하게 될 다른 게임에서도 이 감정을 언젠가 또다시 느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